앞에 인용한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말씀은 너희와는 재림할 때까지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무서운 선언인 것입니다.
만일 이들이 주님을 그토록 괴롭히지 않았던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후 근 이천 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세계를 유리방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저주가 떨어진 후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는 예언은 40년도 못되어 로마의 침입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 당시에는 제자들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으나, 그것은 실로 무시무시한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하늘의 도를 전파하려면 마땅히 교권을 쥐고 있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아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들에게 그처럼 가혹하게 대했을까요? 주님은 결국 자기가 저들의 손에 처참하게 죽임을 당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그들에게 목숨을 내맡긴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두려울 게 무엇이며, 주저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주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울을 제외하고는 저들 중에서 이렇다할만한 주의 종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저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 갖은 학대를 받아 왔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