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아니라, 이런 예수의 이중성(二重性)을 이해한다는 것은 오늘날도 불신자들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물며 예수님 당시에 시골의 젊은 목수가 지닌 신성을 알아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열성적인 제자들이 윗저고리를 벗어서 예수가 걸어가는 길에 펴고, “주의 이름으로 오신 왕이여!” 하고 야단법석을 떠니, 바리새인들은 보다 못해 주님에게, “선생님, 거 당신의 제자들은 제정신이 아니군요. 남 보기에 덕스럽지 못하니 저들을 좀 제지하시오.”(눅19:39)하고 충고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입에서 나온 ‘선생님’이라는 말에 유의해야겠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도저히 선생님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예수를 신격화(神格化)하는 무리가 있으니 실로 한심한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를 신격화한 것이 올바른 평가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서는 이들만이 당신의 사람이요, 그밖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군식구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내가 어떤 관련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며, 관련이 없는 사이라면 하나님의 섭리는 나에게 아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에게는 물론이고,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마귀입니다.(마4:1 이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