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책머리에

기독교는 덕을 초월한다. 이것은 구속의 대전제이다. 인간이 덕으로는 생명줄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늘의 선물’이라는 말씀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다. 휴머니즘(인도주의)이 벽에 부딪쳤을 때 눈앞에 뚫린 작은 통로―이것이 곧 생명에의 길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절망 속에 비치는 한 가닥 섬광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덕에 약하다. 덕을 쌓을수록 자기 허물을 더욱 많이 의식하게 마련인 것이 인간이라는 이름의 귀중한 동물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뿐”(마19:17)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주님 자신도 육을 입고 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그 영향을 받게 된다는 고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덕을 강조하신다. 덕을 초월하려면 덕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교리상 초대교회 당시에는 주로 기독론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즉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다. 그러다가 중세에 와서는 구원론이 논쟁의 주류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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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그리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과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성경의 권위가 논란의 초점이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문제되어, 보수주의 신학에 대해 자유주의 신학이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그리하여 신학이 점점 세상 학문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성경을 인간의 생각으로 해석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는 그것이 인간의 글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데 있다. 이것은 누구나 눈이 열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수긍할 수 있지만, 여기 신앙 체험이 곁들이면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된다. 오늘날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큰 은총만 해도 그렇다. 성경에 예언된 말씀이 그대로 응해지고 있으며, 성령이 이를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위에서 지적한 세 가지 논쟁은 이미 발간된 ‘에덴의 메아리’에도 언급되어, 시비를 가리고 있다.

그럼 오늘날 이 시점에서 성경상 가장 요긴한 문제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세계에 대한 전망이라고 하겠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어떻게 마무리 짓느냐가 궁금한 것이다. 그러나 이 궁금증은 인간이 저술한 미래학(未來學)이나 모든 사이비(似而非) 예언서에 의해서는 풀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보혜사 성령을 충만히 받은 주의 종이 터뜨리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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