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3.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구약 시대부터 있어온 두 종파로, 여러 가지 면에서 견해를 달리했을 뿐더러 서로 시기와 반목을 일삼아 왔습니다. 즉 사두개파는 귀족적인 반면에 바리새파는 평민적이고, 전자는 정치적이고 후자는 종교적이며, 전자는 부활을 부인하고 후자는 부활을 인정하였습니다.(행23:8)

그런데 ‘부활’이라는 말은 주님이 비로소 입 밖에 내었으며, 따라서 구약 시대에는 부활에 대한 깊은 이치를 잘 몰랐습니다. 다만 다윗이 자기가 죽으면 주님으로 말미암아 음부에 버림받지 않기를 원한다는 정도의 의사를 밝히는 데 그쳤습니다.(시16:10)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부활을 설사 인정했다손 치더라도, 영혼 불멸과 관련시켜 희미한 의식(意識)을 가졌을 뿐, 그 영적인 의미는 몰랐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이 두 파에 속하는 사람들이 각각 주님과 성경 토론을 하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파 중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사두개파였습니다. 주께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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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이 제일 싫어하는 부활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 요컨대 기독교의 핵심은 이 부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기독교에서 부활의 교리를 빼면 한갓 사랑의 종교, 즉 모럴(도덕)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니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과 주님은 그야말로 앙숙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부활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나왔습니다. 저들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을뿐더러, 반대파인 사두개인들의 주장과 정면으로 대립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두 파가 주님의 가르침 때문에 반목했느냐? 그건 아닙니다. 사두개파는 정치적으로 득세하기 위해 바리새파와 때때로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이들은 깊이 생각한 끝에 주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질문 공세를 펴기로 했습니다. 즉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형이 결혼하여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대를 잇도록 되어있는데, 만일 일곱 형제가 차례로 자식 없이 죽었을 때, 부활하면 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마22:23-28)

이들은 주님이 주장하신 부활을 이 세상에서 살던 모습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이 경우에 주께서 “그 여자는 일곱 형제의 아내가 된다.”고 대답하면 천국보다 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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