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7:39) 이긴자가 나타나면 유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오늘에 와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주께서 땅에 계실 당시에 생수를 주실 수 있었던들 구태여 사도 요한을 통해 다시 이런 약속을 했을 리가 만무합니다. 주님도 그 당시에 생수의 은혜는 주시지를 못했습니다. 피 흘리시기 전의 주님은 약속을 했을 뿐 실천은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불의 성령을 받은 분입니다. 즉 성령이 그의 온 몸에 불과 같은 뜨거움을 느끼게 하면서 임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받은 증거를 남기기 위해 감각적인 느낌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생수가 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생수를 만드는 것은 주님이지만, 생수를 주는 것은 이긴자인데, 당시에 이긴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계시록의 주인공인 이긴자가 생수를 유업(遺業)으로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역사상 생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모세 시대는 물론이고, 생수에 대한 예언을 한 이사야나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 시대에도 생수는 없었으며, 주님 당시나 사도 시대에도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오직 이긴자가 나타난 시대라야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앞에 인용한 본문 말씀이 이 땅에서 응해진 것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엄연한 사실로 나타나 있으니까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