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

당시의 백성들, 특히 교권을 쥐고 ‘서로 영광을 취하는’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새파란 시골 청년이 불쑥 나타나 이런 폭탄선언을 했을 때, 그 말이 어떻게 들렸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그렇게 몰라보고 푸대접하다 못해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처사를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큰 이적을 보여 주고 신령한 말씀을 들려주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면 안 그러겠다는 자신이 있습니까? 주께서 그렇게 당하신 것은 오히려 당연하기까지 합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하나님을 제일 잘 믿노라고 앞장선 부흥사, 선교사, 신학자, 교역자 할 것 없이 거의가 ‘자기 영광’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명성이 따르고, 돈이 붙고, 영화가 돌아오지만, 하나님은 이런 것을 합당이 여기지 않습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제일 우리에게 요긴한 것은 계시록입니다. 계시록은 성경 66권의 총결산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시록은 이긴자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계시록의 중심인물이 이긴자입니다. 그러므로 이긴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계시록을 올바로 해석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계시록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계에서는 계시록을 덮어 두다시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긴 계시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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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

해설한 책이 더러 나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남의 생각을 빌어 왔거나 자기 짐작대로 써 놓은 것으로, 전혀 줄기가 서 있지 않습니다. 터뜨릴 자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단12:9, 계2:17참조)

예언된 역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오늘날 뜻있는 사람들이 계시록을 간혹 상고하지만, 이 계시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며, 자기 영광을 취하고, 하늘의 군대가 되기 위해 이긴자를 찾아 그 은총 가운데 들어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의 설교가 우물 안의 개구리 소리로 들린 것처럼, 오늘날 이긴자가 나타나 외쳐도 별로 반응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몰라본 것이 죄인 것처럼, 이긴자를 외면한 것이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둠이 빛을 가린 격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마10:41)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예언된 시대가 오면 당연히 큰 변혁이 오게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앞선 자가 뒤에 서고, 뒤진 자가 앞서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긴자의 역사에 ‘자기’가 살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순간이라도 나를 앞세울 때 떨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큰 은총을 힘입어 이름이나 내고 떵떵거리는 것은 가장 금물입니다. 우리는 모름지기 겸손한 마음으로 주의 인격을 자기 인격으로 삼기 위해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은혜를 연결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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