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지, 인간이 하나님을 지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당신을 공경하게 했습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아 공경했습니까? 대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이상 중에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이래라 저래라 지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을 위해서이며, 결코 아브라함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동기부터가 당신이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사43:7) 마귀를 소탕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힘을 빌려 한몫 보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위로를 얻고, 마음이 평화로워 행복하게 잘 살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믿음에서 오는 이 부수적인 이득을 배격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은 신앙의 작은 소득이지 목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줬다 안 줬다 하시겠습니까? 그 축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욕이 돌아갈 때 하나님은 축복은커녕 오히려 형벌을 내리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무수히 보아 왔습니다.

기독교는 인간 위주의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 위주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위주로 살아야지 자기 위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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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

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자기류의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계에서 이것을 별로 알려고 하지 않고, 덮어놓고 믿으면 되려니 합니다. 왜?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모르느냐? 주님과의 진정한 교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도 시대에는 주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도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고, 스데반이 돌팔매를 맞으면서 기꺼이 죽어간 것은 주님이 그것을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성도가 죽는 것을 귀히 보십니다.(시116:15) 무릇 주께서 원하시는 일과 결부되지 않는 모든 움직임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뜨겁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무도 그 열성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최대의 흉악범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사실입니까! 그런데 그는 주님을 대하고 나서 비로소 자기 잘못을 크게 뉘우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다메섹에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한평생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답시고 끝까지 주를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데 앞장섰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바울은 죽도록 하나님께 자기류(自己流)의 충성을 했겠지만, 그 말로(末路)는 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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