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닙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2:26) 그럼 이 말씀과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이 어떻게 부합할 수 있겠습니까? 원래 믿음과 행위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이 자라면 행위가 다듬어지고, 행위가 다듬어지면 믿음이 자라게 마련입니다.

성경에는 혈루증으로 12년 동안이나 고생하던 여자가 주님의 겉옷 자락을 만져서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여자가 당신의 옷자락을 덥석 잡는 것을 보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눅8:46)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여자는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면서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가 예수의 겉옷만 만져도 이 병이 나을 텐데…’ 하고 그 기회를 잔뜩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 갸륵한 믿음이 그녀로 하여금 주님의 뒤를 밟아 급기야 주님의 겉옷 자락을 잡게 했던 것입니다.

여자가 생면부지인 남자의 옷자락을 잡아당긴다는 것은 실례의 정도가 아니라 망측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것 저런 것 다 잊어버리고 이처럼 대담하게 나왔던 것입니다. 즉 그 믿음에 그 행위였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우선 이런 극성이 따라야 합니다.

이런 행위가 앞설 때 다름 아닌 정한 그릇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음식을 담으려면 그릇부터 먼저 깨끗이 씻어 놓아야 합니다. 이 그릇을 닦는 작업이 곧 행위입니다. 주님은 “새 부대에 새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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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붓는다.”(마9:17)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이 새 부대와 새 술을 만드는 공장이 바로 에덴성회입니다. 내가 여기서 믿음과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그것이 이를테면 이 공장을 제대로 가동시키는 기름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믿음이며, 행위는 믿음을 북돋아 주는 구실을 합니다. 이와 같이 믿음과 행위는 일종의 주종 관계(主從 關係)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믿음에 의해 구원에 이르고, 행위로 말미암아 공로가 생겨 응분의 보상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 나라에서의 서열도 이 공로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는다.”(잠24:12)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역사에 동참하게 된 여러분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얼마나 게을리 하고 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과부의 엽전 한 닢을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입니다. 주님 앞에는 큰 그릇과 작은 그릇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자기 일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이것에 의해 그 사람의 공로가 평가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일만 충실히 하면 됩니다.

마리아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주님의 일을 뒤에서 많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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