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

에 앞선 역사만 알고 있는 사람은 기름이 아주 끊긴 것으로 생각하고 실망하게 되지만, 나중 역사를 알게 되면 소망을 되찾게 마련입니다. 잃었던 은혜가 곧 다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역사는 결코 매장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보(修補)하는 역사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나중 역사가 끝을 잘 마무리 지을 때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보이던 앞선 역사도 자연히 불명예를 씻게 되는 것입니다.

두 감람나무의 역사에서 선두에 서는 사람은 아무래도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혼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성경에 명시된 ‘두 감람나무’라는 말씀과 부합되지 않은 것으로 알기 쉬우며, 감람나무의 역사 전체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두 감람나무는 동시에 나타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시에 나타나면 백성들은 두 파로 갈라져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씨를 뿌릴 때의 종과 열매를 거둘 때의 종을 따로 일정한 기간을 두고 적당한 시기에 세우게 됩니다. 이 적당한 시기란 앞선 역사가 마무리될 무렵이며, 이것을 성경은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어두워갈 때”(슥14:7)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람나무가 혼자서 일하는 동안은 ‘두 감람나무’라고 명시한 성경과 부합되지 않아, 말씀을 억지로 풀이하며 가감을 하는 폐단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두워갈 때 빛이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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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면’ 그때 말씀이 올바로 풀려나가 앞뒤의 모든 경위가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나중에 나타난 감춰진 빛이 어둠을 환히 밝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앞선 역사를 이어받아 수보하는 완성의 종에게 자상하게 가르쳐 깊은 말씀이 터져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단12:5-참조)

주인이 목수를 시켜 집을 짓는데, 마땅치가 않아 그를 물러가게 하고 다른 목수로 바꾸었을 경우에, 새로 고용한 목수에게, “먼저 사람은 그렇게 했는데, 당신은 이렇게 해 주시오.” 하고 앞뒤의 자상한 내막을 설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물러가는 목수를 불러 놓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면 그보다 더 부질없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이 단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말씀이 터져 나가는 것은 같은 하나님의 역사지만 먼저 하는 일과 나중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감람나무는 계시록에 나오는 이긴자를 가리킵니다. 감람나무는 ‘온 세상의 주를 모시고 선 자’(슥4:14)이고 ‘큰 산도 평지가 되게’(슥4:7) 하며, ‘금 같은 기름’, 곧 성령을 부어주는 자이며,(슥4:12) 이긴자는 ‘주의 보좌에 함께 앉는 자’이고,(계3:21) ‘만국을 쳐서 질그릇 깨뜨리듯’하고,(계2:27) ‘감춰진 만나’, 곧 주의 보혈을 먹여주는 자입니다.(계2:17) 즉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뜻은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감람나무의 역사가 서서히 세대교체를 하고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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