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

게 죽는 장소가 세 곳이나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죽음은 다시 살아나 성도의 권세를 회복하게 되어 있습니다.(계11:11) 특히 계시록에는 영적인 말씀을 읽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육적으로 표현한 데가 많은데, 이것을 곧이곧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하긴 신학자들이 대를 이어 연구해도 알쏭달쏭한 것을 나 같이 불학무식한 젊은 사람이 알다니, 남들이 코웃음을 쳐도 나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 거짓말을 하느냐? 물론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내가 지금까지 한 말 가운데 성경과 어긋나는 데가 있나 한번 생각해 보시면 잘 알 것입니다. 내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로 여러분을 3년 동안 이끌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랬다면 벌써 들통이 났을 겁니다. 나는 성경을 올바로 가르쳐 드리는 것뿐입니다. 가끔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해 말했습니다마는, 그건 그대로 되었으며, 또 될 것입니다. 나는 3년 전에 감람나무의 역사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대충 말씀드렸는데, 오늘날 그대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건 가짜입니다. 주의 종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나는 슬픔의 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레미야하고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나도 예레미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이 너무나 고되기 때문에 독신으로 주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양떼들이 순종치 않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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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님께서 맡긴 사명을 다하지 못했지만, 나는 여러분이 내 말에 순종하기 때문에 사명을 기어코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슬픔의 종이라는 말을 정정하여 ‘고난의 종’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종’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무너진 데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쉽게 목회하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과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만한 말씀과 권능을 들고 나서면 어디가나 환영받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내가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가나안의 귀신들린 한 여인이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이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노라.”(마15:24)고 말씀하시고 일단 거절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주의 종들도 각각 맡은 사명이 따로 있습니다. 베드로는 뿌리는 종이고, 바울은 거두는 종이었습니다. 감람나무의 역사도 뿌리는 자가 있고, 거두는 자가 있습니다. 계시록에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을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두라.’”(계14:15)고 했는데, 이 ‘이한 낫’을 가진 자가 곧 거두는 종입니다. 이 곡식은 이른바 ‘알곡’을 가리키며, 우리의 이 역사는 요컨대 이 알곡을 만들어 천국 창고에 들여놓는 작업장입니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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