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이스라엘 민족은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시험을 당한 끝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시험은 육적인 것이었으나,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영적인 시험이 따릅니다. 이것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5) 성도의 시험

사람의 일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곤고함과 수난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세상을 고해(苦海)니, 진세(塵世)니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한 세상에 남녀와 노소를 가릴 것 없이 각각 자기 나름의 힘에 겨운 짐들을 지고 가는 것이 우리의 일생입니다. 물론 우리는 환경과 여건에 따라 이 짐이 좀 가벼워질 수도 있고 또는 무거워질 수도 있기는 하지만, 주어진 이 고난의 멍에에서 아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해 기를 씁니다. 이것이 곧 우리 생활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즉 괴로운 일은 되도록 피하거나 줄이고, 즐거운 일을 하려고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즐거운 일은 극히 순간적인 반면에, 괴로운 일이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의 생애는 금세 지나가 버립니다. 그리하여 한 줌 흙으로 돌아가거나 재가 되어 훨훨 날아가게 마련입니다. 이보다 더 허무할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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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으실 일이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의 소견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런 세상을 원치 않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처음에 지으신 아담, 하와는 우리네와 같은 이런 죄 있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의 실수로 말미암아 이 땅은 ‘저주를 받아’ 땀을 흘리며 고생스럽게 살게 되었습니다.(창3:19) 그 경위에 대해서는 이미 상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죄악 세상을 회복하여 새 세계를 이룩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6천 년의 역사였습니다. 이것을 못하게 훼방하는 것이 곧 마귀입니다. 이 마귀의 간계에 대해서도 여러분은 많은 체험을 하고 있을 줄 압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너희가 시험을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4:12-13) 베드로는 자기에게 닥치는 환난을 십자가의 고난에 비유하여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이 ‘고난을 즐거워하라’는 가르침은 그의 산 경험의 소산이라, 더욱 감명 깊게 들립니다.

우리는 여기서 ‘즐거워하라’는 말에 유의해야겠습니다. 베드로는 성도의 즐거움이 지닌 성격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컨대 고난 뒤에 누리게 될 그 나라에서의 영광으로 인한 희열(喜悅)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안이한 즐거움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고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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