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다. 그렇지 않은 인간의 것은 결코 신령하지 못합니다. 설사 고귀한 인격이나 순수한 양심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인격을 ‘고귀하다’고 할 수 없고, 하나님과 동떨어진 양심에 ‘순수한’ 이란 형용사를 붙일 수 없는 것입니다.

무릇 신령한 것은 위로부터 오는 것이지, 결코 땅에서 솟아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주의 은총이 담길 때 비로소 그 그릇이 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그릇에 금은보화가 담긴 격이라고 할까요? 이 금은 보화를 오래 간수하고 있어야 합니다. 금방 쏟아 버리면, 보잘것없는 질그릇이 되어버릴 뿐더러, 다시 주워 담기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는 그때그때 잘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현재 주님을 얼마나 뜨겁게 사모하고 충성을 다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어제까지 주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충성했어도 오늘 어찌어찌 해서 떨어지면, 전에 애쓴 보람이 다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와는 반대로, 어제까지는 마귀의 괴수 노릇을 했더라도, 오늘 회개하고 매달리면 은총 가운데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는 연조가 필요 없으며, 우리는 언제나 새로 출발하는 심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혼이 주와 연결되어 있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받아들일 때 그 영이 우리 안에 담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악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악령이 우리를 덮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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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고 하여도 우리 자신이 마음의 무장을 튼튼히 하여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침범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이나 악령은 우리가 기회를 제공했을 때 비로소 들어와 좌정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찬송을 부르면서 세상 생각을 하게 되면 성령이 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귀한 손님을 맞으려고 해도 집안을 깨끗이 정돈하는데, 하물며 보배로운 성령을 맞아들이기 위해 찬송을 부르면서 그처럼 한눈을 팔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부르는 찬송은 집안 정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경우에 신령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고, 정성은 인간이 드리는 것으로, 이 양자는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입니다. 즉 신령해지면 정성을 기울이게 되고, 정성을 기울이면 신령해지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는 개성과 처지에 따라 다르게 내립니다. 가령 대체로 할머니나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들은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은혜가 내리고, 지성인에게는 깨달아 알 수 있도록 내립니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개성에 따라 지적, 정적 및 의적인 요소에 강약이 있듯이, 믿음에도 이 세 가지 유형에 강약이 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에 따라 지적인 면이 앞서는 경우도 있고, 정적인 면이나 의적인 면이 앞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기도를 하게 되면 으레 눈물이 앞을 가리는 사람은 정적인 신앙이 우월하고, 설교 말씀에서 남달리 큰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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