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내리는 지시는 바울의 주장에 동조하라는 내용에 그치고, 바울의 경우처럼 자주 지시가 간 것은 아닙니다. 주께서 크게 들어 쓰시는 종은 이미 베드로가 아니라 바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베드로의 주장이 한동안 엇갈리게 되자 백성들은 어느 쪽이 옳은지 몰라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자가 백성을 사이에 두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니 말입니다. 그럼 주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이렇게 싸움을 붙여놓고 ‘백군 이겨라. 홍군 이겨라.’ 하시는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이 경우에 주님은 바울의 편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즉 주님은 하루에 3천 명을 회개시킨 베드로보다, 겨우 열두 명밖에 회개시키지 못하는 바울의 일이 성취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날이 갈수록 바울을 따르는 무리가 점점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은혜의 줄기는 같아도, 한쪽 백성들은 정으로 쏠리고, 다른 쪽 백성들은 원리에 끌리니, 그 은혜가 판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바울을 따르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주를 가까이하는 길이 여기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와 바울, 3,000 대 12, 뿌리는 종과 거두는 종은 이렇게 차이가 나지만, 하나님은 후자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과 베드로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 것은 주의 지시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 바울은 베드로의 움직임에 대하여 잘 알지만, 베드로는 바울의 움직임에 대하여 잘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