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니다. 이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본의 아닌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양자를 분간해서 처신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과 그 제자들의 사이를 상기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나 행적 등은 제자들에게도 납득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들은 주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면 한 자리 하려고 잔뜩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제지간(師弟之間)에 오가는 대화가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하시는 그 나라의 이야기를 이 세상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마19:21) 이 말씀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구구할 수 있지만, 주께서 육적으로만 잘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잘 살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역설도 나올 법합니다. 하긴 하나님의 뜻은 하도 깊어서, 은총만 해도 어디까지가 그 크신 손길을 베푸시는 것인지 우리가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가난도 하나의 은총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예컨대 가난이 동기가 되어 주님을 찾는 경우가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