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합니다. 이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본의 아닌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양자를 분간해서 처신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과 그 제자들의 사이를 상기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나 행적 등은 제자들에게도 납득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들은 주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면 한 자리 하려고 잔뜩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제지간(師弟之間)에 오가는 대화가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하시는 그 나라의 이야기를 이 세상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마19:21) 이 말씀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구구할 수 있지만, 주께서 육적으로만 잘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잘 살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역설도 나올 법합니다. 하긴 하나님의 뜻은 하도 깊어서, 은총만 해도 어디까지가 그 크신 손길을 베푸시는 것인지 우리가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가난도 하나의 은총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예컨대 가난이 동기가 되어 주님을 찾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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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2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물질이 풍성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또는 멀리하기 쉬운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주께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부자까지도 도매금으로 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본위로 살며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언제나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부자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잘 섬기느냐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께 드리는 연보만 해도 그렇습니다. 요컨대 얼마나 정성껏 드리느냐가 문제입니다. 깨끗지 못한 것은 주께서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순한 것이 섞여 있으면 주의 역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은혜라고 하면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을 보았다거나 화끈한 불을 받았다거나, 하는 등등의 감각적인 것을 은혜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입니다. 이 밖에 더욱 소중한 은혜가 따로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혀서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하나님의 섭리 안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앞에는 생명의 큰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가고 못 가는 것은 여러분이 하기 나름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가려면 우리의 속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주께서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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