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내지 않으실까요? 드러내야 하나님은 영체이므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혹시 영안이 띄어 그 모습의 일부를 보더라도 눈이 부셔서 그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출19:18, 행9:8)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즉 성령의 은사를 전혀 받지 못했거나, 받아도 쥐꼬리 만큼밖에 받지 못한 사람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스럽게 생각된다는 것 자체가 성령을 받지 못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초대교회 때 사도들에 의해 막을 연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그 후 세계 방방곡곡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에 와서는 저 아프리카의 산간벽지에도 교회가 세워지고, 흑인들의 두툼한 입술에서도 찬송가 소리가 흘러나오는 형편입니다. 이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무턱대고 좋아만 할 수 없는 것이, 그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에게 과연 얼마나 영광을 돌리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드느냐 하는 것보다도, 얼마나 진심으로 당신을 공경하고 덕스럽게 사느냐 하는 데 관심이 있으십니다.

한국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들어온 지도 어느덧 2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나, 급속도로 부흥된 것은 6.25동란 이후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 전란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외국의 원조까지 곁들여, 교회는 우선 구호기관으로서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섰다 하

138 에덴의 메아리3권
Chapter 4

면 교회’라고 할 정도로 곳곳에 교회가 들어서고, 수많은 사람들은 구호물자라도 타는 맛으로 교회에 몰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중에는 빈약한 성령 체험만으로도 죽음을 맞아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숨져간 신도들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2십여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양적으로는 그처럼 교회가 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에 일어난 신앙 붐에 비하면 영적으로는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만큼 믿음이 식은 셈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독교의 신앙이 여느 종교처럼 인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이런 폐단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언약한 대로,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처럼 돌아가시게 되자 실망한 제자와 문도들에게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40일 동안이나 이모저모로 보여주셨습니다. 즉 저들로 하여금 영안을 뜨게 하여, 때로는 산지기로, 때로는 길손으로 나타나 보여주셨기 때문에 잃었던 소망을 되찾은 무리가 약 500명쯤 되었습니다.(고전15:6) 그러나 이들 중에 오순절이 되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수는 12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다락방치고는 상당히 넓은 편으로, 마가는 꽤 부자였던 모양입니다.

이 다락방에서 비로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향연이 베풀어졌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몸이 화끈거리면서 술에 취한 사람같이 되고, 방언을 받아 신나게 떠들었습니다. 아무튼 저들은 이 불과

에덴의 메아리3권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