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니까? 베드로는 주님의 놀라운 권능을 직접 보고 들었으므로,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고 여느 죄인들처럼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주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신다면 세상은 완전히 마귀의 소유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2) 이와 같이 주님은 지상에 계실 때 성령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는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려도 자기만은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한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한 사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께서 승천하신 후에 불과 같은 성령을 받고 나서는 전도에 힘써 하루에 3천 명이나 주님에게로 인도하고, 일설에 의하면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성령을 받기 전의 베드로와 받은 후의 베드로는 이렇게 천양지차가 있었던 것입니다.

(2) 이긴자의 권세

바울은 자기가 맡은 직분이 모세의 것보다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고후3:7) 우리가 언뜻 보면 지팡이로 홍해를 가른 모세의 권능은 사람들에게 안찰을 하여 성령을 부어 주는 은사보다 월등 큰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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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모세는 파리 목숨 하나도 살릴 수 없었는데 비해 바울은 죽어 가는 뭇 심령들을 구원으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의 종을 통하여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은총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박사 학위를 몇 개씩 갖고 있는 교역자라 하더라도 그를 따르는 양떼들에게 신령한 꼴을 먹여 주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성령을 부어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은 목사의 웅변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굶주린 영의 창자를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이와 같은 현실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그 목자와 양떼들은 영적으로 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그만이라면 나와 주님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사랑을 주장한 한 도학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도덕적으로 완성의 단계에 이른 성인군자와 다릅니다. 그는 태어나기 수백 년 전에 그의 행적에 대해 많은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예언된 장본인으로, 예언대로 왔다가 예언대로 가신 하늘의 존재입니다. 그가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야만 성령이 본격적으로 역사하여 마귀를 소탕하고 여호와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주께서 죽지 않고 그냥 하늘에 올라갔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될 수 없고, 뭇 사람들에게 당신의 ‘피와 살’, 곧 보혜사 성령을 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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