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우 어려운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보고 여러분 중에는 용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께서 감당케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여느 종교의 경전처럼 세상에 대한 교훈적인 말은 별로 찾을 수 없고 거의 영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흔히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데, 이 사랑에 대해서도 내용이 많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기독교가 수도에 그치지 않는, 생명의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영적인 말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하지만, 주님으로서는 극히 초보적인 이야기밖에 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이야기해 봤자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못 다한 말씀을 보혜사 성령에게 미루셨습니다. 주께서 희한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사람들을 주위에 많이 모여들게 했으나, 이들은 고작해야 주님을 큰 선지자 정도로 인정했을 뿐, 액면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아라고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은 산에서 야외집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이분은 원래 산악인입니다. 생업이 목수라 언제나 산을 찾아다녔습니다. 이 점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온 세례 요한과는 활동무대부터가 다릅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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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님은 그때그때 청중들의 동태에 따라 대체로 즉흥적인 설교를 하였습니다. 즉 우선 제자들을 시켜 어느 날 아무 데 사람들을 모이게 하라고 지시하고는, 이들 중에 어부가 많으면 고기 잡는 비유를 들어 말씀을 하고, 농부가 많으면 씨 뿌리는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좀 더 영의 세계를 알기 쉽게 풀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의 집회에 모여든 청중은 설교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보다 오히려 병을 고치러 온 환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소경, 앉은뱅이, 귀머거리, 절름발이, 중풍 환자 등으로 붐비는 청중들 앞에서 주님은 돌 몇 개를 괴어 연단으로 삼고, 육성으로 고래고래 외쳐야 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설교 중에서 비교적 짜임새가 있는 것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5:3)로 시작되는 ‘산상수훈’입니다. 흔히 이 산상수훈을 매우 중요한 주님의 가르침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초기의 설교로, 따지고 보면 세상적인 교훈에 기울어져 그다지 깊은 영적인 말씀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에 마치 주님의 가르침이 요약되어 있기나 한 것처럼 여기는 것은 모럴이나 교훈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습성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모럴 이상의 종교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경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내용이 기독교의 초보 단계에 해당된다는 것을 지적해 둘 뿐입니다.

주께서 영적인 말씀을 처음으로 발설하신 것은 니고데모라는 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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