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이슬로, 생수로 내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나 여러분이 잘나고 예뻐서 이 역사에 불러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둠의 세력을 완전히 소탕하고 우리를 통하여 어둠 속에서 헤매는 무수한 형제들을 건지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알고 여기 동참하는 긍지를 갖는 한편, 무거운 사명감을 느껴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 역사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기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4) 산상수훈

무릇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 언제나 십자가를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의문입니다. 주님을 항상 가까이 모시고 그 가르침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십자가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며, 이렇게 되면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붙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십자가상을 쇠줄에 매어 목에 달고 다니면 그게 십자가를 붙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일까요? 십자가상을 방안에 걸어 놓고, 드나들 적마다 자연히 눈에 뜨이게 하는 것이 십자가를 늘 바라보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마움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 곧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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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그런데 한 걸음 나아가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라고 했습니다.(마10:38) 이건 또 무슨 뜻일까요? 우리도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예배에 잘 참석하고,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전도에 힘쓰며, 십일조도 착실히 바치는 등등이 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는 것을 무슨 어마어마한 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작은 일부터 차곡차곡 해나가면 그것이 바로 주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요, 동시에 주의 뒤를 따르는 것이 됩니다.

주님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11:30)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시지 않습니다. 짐을 져도 우리가 은혜 가운데 있으면 누구나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지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다 보면, 예수를 믿으려고 해도 술, 담배를 끊어야 하기 때문에 못 믿겠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술, 담배 끊는 것은 자기 자신을 좀 더 경건하게 가다듬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며, 이것 역시 주께서 쉽사리 끊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쟁이가 되면 제사를 드릴 수 없어 못 믿겠다고 합니다. 왜, 예수쟁이는 제사를 안 드리나요? 다만, 추도예배라고 해서 제사의 형식을 달리할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행위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안 믿는 것까지도 우리의 의사에 맡기십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따르기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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