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간은 객지 생활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상에는 기른 정도 낳은 정 못지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은 그 중간에서 낳은 부모도 괄시 못하고 기른 부모도 등질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는데, 우리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습니다. 즉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과 마귀의 사이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동시에 마귀의 세상을 저버릴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당신의 편으로 우리를 이끌려고 하시고, 마귀는 자기편으로 우리를 잡아두려고 합니다.

물론 우리의 갈 길은 뻔합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타향살이를 청산하고 본래의 고향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쉽지, 실천에 옮기려면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고향으로 찾아가게끔 인도하는 방법을 정하였는데, 이것이 곧 룰(규례)입니다. 이 룰은 이와 같이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이 곧 예정이며, 이 예정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움직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룰은 하나님만 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도 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하나님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천사나 선지자와 사사 및 성도에게 마귀와 싸울 권세를 주듯이, 마귀도 짐승과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 심지어 술객들에게도 하나님과 대적할 권세를 주어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

94 에덴의 메아리2권
Chapter 12

12. 하늘의 법도와 비밀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렘33:1-3)

예레미야는 이사야보다 약 100년 후의 사람으로, 주전 626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사야는 앗수르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했으나,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침공으로부터 예루살렘을 구출해 내는 데 실패하여 그를 가리켜 ‘슬픔의 선지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고 그 사명을 이루지 못하면, 선지자 장본인은 물론이고, 그를 따르던 무리는 운명을 함께 나누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백성들이 그가 전하는 말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여호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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