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할 수 있습니다. 기도란, 요컨대, 주님을 사모하고 마음을 십자가에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나 주와 가까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에 응답을 받는 비결의 하나가 바로 전도입니다.(요15:16)

신앙이란 약자를 위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갖는 데 강자와 약자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하나님 앞에서 누가 강자며, 누가 약자겠습니까? 다 똑같이 어리석고 미련한 죄인입니다. 강자니 약자니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평가이며, 이것은 하늘나라에까지 통용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가장 요긴한 것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여건이 유리한 처지에 있으면 자연히 주님과 멀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불우한 처지에 있는 것이 좋기도 합니다. 이것은 물론 믿음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환경이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우리는 이를 시정, 또는 조절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처한 모든 여건을 기도생활을 하는데 유리하도록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가장 뜨겁게 사모한 사람은 영의 세계에 제일 깊이 들어간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그러니까 권세, 명성 할 것 없이 이른바 모든 면에서 최대의 강자이면서도 하나님을 눈물 뿌려 사모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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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우리는 언제나 주님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가령, 주님보다 자식이나 남편 혹은 아내를 더 사랑한다면 일종의 우상 숭배가 됩니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마10:37) 그래서 예수를 믿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주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진심으로 뜨겁게 사모하고,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심정이 우러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여도 마음이 냉랭하다면 평소에 세상에 지나치게 매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을 위해 죽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할 때 힘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나는 대체로 혼자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주와 교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길을 가면서도 주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통입니다. 바울이 단조롭고 고달픈 생활을 하면서 주의 도를 전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환경이 편안한 것은 주님을 섬기는데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됩니다. “희락을 애통으로 바꾸라.”는 성경 말씀은 이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죄를 안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죄를 씻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죄를 씻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회개나 전도나 기도가 그 방법이 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쉬운 방법은 주의 종을 통하여 성령을 받고 죄를 소멸하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성과를 올리지 못하지만, 주의 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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