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

이렇게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리가 만무합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전14:2) 이 말씀은 방언보다도 예언을 우위에 두고 권장함으로써 방언을 암암리에 꺼리고 있습니다.

여기 본문 말씀에 “방언을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주객(主客)이 전도되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방언이 본래의 여호와의 뜻에서 많이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방언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기 의사를 전하기 위한 것이지, 하나님에게 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 굳이 하나님에게 방언으로 고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리는 영인 천사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께 고할 무슨 비밀이 따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고전14:22)이라고 말했습니다. 방언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그것도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표적으로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예언과 방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14:30-40) 여기 “방언하기를 금하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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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바울의 말은, 위에서 말한 그의 입장과 그 가르침을 종합해 볼 때, 방언에 대한 긍정적(肯定的)인 표현이 아니라 부정적(否定的)인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자기 의사를 좀 더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전13:1)고 하여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친다.”(고전13:8)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계의 일각에서는 방언을 한다고 해서 옆에 있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말을 하는 것을 성령의 은총이나 받은 줄로 착각하는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그것이 만일 성령이 역사하는 참된 방언이라면 그 방언을 미국 사람, 프랑스 사람, 중국 사람 등 이방인이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나라 동포도 통역을 해야 비로소 알아듣는 방언이라면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에 말하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는(고전12:10) 성령을 충분히 받지 못해 분명히 알아들을 수 없을 때, 그 사람보다 성령을 충분히 받는 자가 풀이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미 방언을 거두셨는데, 믿는 자들이 방언을 하게 해 달라고 간구할 때 마귀가 틈타기 쉽습니다. 이 경우에 영을 분간 못하면 착각을 일으키는 것도 당연합니다.

대관절 무엇 때문에 한 교회 안에서 동포끼리 모여서 예배를 보는 데 방언이 필요합니까? 필요가 없는데 성령이 역사하게 하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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