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따라 정확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야 하는 겁니다. 어쩌다가 병이 나았다, 한마디 삐죽 신령한 말을 했다, 이래서 감람나무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걸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신앙 운동이 어떤 줄 압니까? ‘누가 병을 고친대’ 하면 ‘와아’ 그리로 몰려갑니다. 그러다가 거기서 권태가 나면, ‘어디에 신령한 목사가 있대’ 하면 ‘와아’ 보따리 싸 가지고 갑니다. 이처럼 만날 철새처럼 몰려다닙니다.
우리 역사는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한 사람이 들어오면 주의 종은 그 사람을 죽을 때까지 책임져서 알곡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시작부터 끝까지 나한테 그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재료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없이는 못 끌어갑니다.
그렇지 않고 도중에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 도망가 버립니다. 그래서 또 새로 와야 합니다. 그 다음에 또 한참 있다가 도망가고 또 새로 오고, 그러면 한 사람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세마포를 입게 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그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의 종이 여러분들을 끌어가는 방법이 다른 겁니다.
양떼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주의 종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주의 종은 주의 종대로 상대를 끝까지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 대해 주의 종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생애를 마칠 때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