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셔 왔으나, 이제 그는 그 악몽 같은 시련에서 불사조처럼 떨치고 일어났다. 아마도 여호와께서 그를 짐짓 그런 눈보라 속에 던져 키워 왔던가 보다.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한다던가.

그는 어디다 놓아도 결코 구겨지는 일이 없다. 그의 명랑한 성격도 성격이지만, 인간됨이 그렇게 순박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두렵기 짝이 없다. 누구나 그의 눈에 자기의 정체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몰지각한 친구들이 그를 도깨비로 몰아세워도, 그는 소탈하게 너털웃음으로 말아 버리기 그만이다. 악령을 무찌르는 그가 도깨비라면 ‘마귀가 마귀를 내쫓을 수 없다.’(막3:23)는 주님의 말씀은 거짓말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당신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때에 따라 당신의 종을 땅에 보내어 역사하신다. 그리고 한 종의 사명이 끝나거나, 또는 여의치 않으면 다른 종을 내세우는 것이 상례이다. 예컨대 모세와 여호수아의 경우가 그렇고, 사울과 다윗, 베드로와 바울의 경우가 그렇다.

이영수―나는 이 이름의 주인을 다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만 종합해 보아도 놀랍기만 하다. 기독교 역사상 이런 하나님의 종이 몇 사람이나 있었던가?

이 땅에도 일찍이 큰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것이 어떻게 퇴화 내지 변모되어 가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8 에덴의 메아리1권
Prologue

뒷수습을 어떻게 하시는가? 이 에덴의 메아리는 이에 대하여 대답해 줄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크신 경륜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이루시고,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믿음을 키워 나가야 하는가―이 밖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궁금증에 대하여 대답해 줄 것이다.

성경에는, 성령의 역사에서,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어두워 갈 때 빛이 있으리라.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슥14:7-8)라고 했다. 그는 이 땅의 한 모퉁이에서 자기를 따르는 양 떼들에게 신령한 꼴을 먹여 주고 있다. 그 후 몇 달이 안 되어, 주를 뜨겁게 사모하고, 주와의 거리가 현저히 좁혀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보다 더 큰 은총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뇨?”(슥4:10) 앞으로 이 구령(救靈)의 새 역사는 범세계적으로 메아리칠 것이다.

에덴의 메아리는 그가 새로 단상에 선 지 다섯 달 남짓한 동안의 설교를 간추려 우선 한데 묶은 것이다. 여기에는, 영의 세계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 ‘감당키 어려운 말들’도 적지 않을 줄 안다. 나는 성경 기자와 같은 심경으로, 그가 터뜨린 말 한 마디를 놓칠세라 조심스럽게 다루노라고 하였으나, 이렇게 종이에 옮겨 놓고 보니, 육성(肉聲)으로 듣던 때와는 판이하게 김이 빠진다. 그러나 이 에덴의 메아리처럼 영의 이야기로 일관된 설교집은 전에 없었으며,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혹시 이 책에 잘못된 데가 있다면, 그것은 내 무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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