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

큰 선지자라도 자기의 분야밖에는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자기 동네에서 톱질이나 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던 사람이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 성경 구절을 들춰내어 자기를 가리키는 말이라니, 누가 곧이듣겠습니까? 예수가 이들에게 아주 낯선 사람이라면 또 모릅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요1:44)는 말 그대로입니다.

(4) 귀 있는 자

주님에 대해서는, 당시의 사람들이 저마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그가 만일 메시아라면,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압박에서 해방시킨 것처럼, 오늘날 로마의 압박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명은 그런 데 있지 않고, 더욱 원대한 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죽음에서 해방시키는 길을 열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면 누구나 ― 예수 이전에 죽은 사람이나 이후에 죽는 사람이나 ― 주님이 당신을 산 제물로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놓여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를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에게 갈 수 없다.”(요14:6)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고작 제2의 모세 정도로만 알고 있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목수의 아들이 나타나 큰소리를 땅땅 치니, 납득이 갈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인용한 성경 구절만 해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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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

들은 그 뜻을 전혀 다른 각도로 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거기에 나오는 ‘포로 된 자’란, 죄의 사슬에 묶인 자를 가리키며, ‘눈먼 자’란 성경 말씀을 보고도 모르는 자를 뜻하는 것이지만, 이들은 이런 대목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영적인 성경 말씀을 육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도를 가르칠 때, 맨 처음에 부딪친 벽은 실로 상대방에게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속으로 크게 한탄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알기 쉬운 비유를 들어 설득에 나섰습니다. 니고데모와가 ‘거듭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주님은, “내가 땅의 것을 말해도 잘 모르는데, 하늘의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요3:12)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가르침이 상대방에게 잘 먹혀 들어가지 않으므로, 주님은 할 수 없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병을 고치는 권능을 보여 주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방편이고, 주님의 사명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죄에 매인 자를 풀어 주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었지만,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이 문제는 잠시 뒤로 미루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 시비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마귀의 괴수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병을 고친다고 꼬집기도 하였습니다.(마12:24) 그러나 주님의 주위에 수많은 무리가 따르게 된 동기의 하나가 이 병 고치는 은사를 베풀어 주었기 때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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