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다. 그러나 지시는 역시 선지자에게 내렸던 것입니다. 선지자란 여호와의 대행자로서 각자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맡은 분야의 일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학개는 이사야나 다니엘과 같은 대선지자와는 달리, 극히 소규모의 일, 즉 전화를 입어 다 부서진 성전을 세우라는 임무를 받았던 것입니다. 성신을 부어 주어 심령을 다듬어 세우는 신약시대의 사도에 비하면 구약시대의 선지자의 임무는 대단한 것이 못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모세도 바울을 따르려면 아득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원리상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한두 구절에 치중하여 풀이할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원리에서 풀어야 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성경을 엮을 때 많은 신학자들이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난해하여 해석이 구구합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아무나 감히 풀 수 없으며 누구나 읽고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통틀어 결국 여호와와 마귀의 싸움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 규례와 법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고서는 입으로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자기가 마귀의 편에서 움직이고 있는 줄도 모르게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영을 믿되 그것이 여호와에게 속했는지 시험해 보라고 하였습니다.(요일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