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이게 됩니다. 즉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주의 은혜 사슬 되어 나를 주께 매는’ 것입니다. 그것은 땅에서 살면서도 언제나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침을 받지 못하고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덕망이 높고 학식이 뛰어나도 인침을 받은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무식하고 못나도 얼마든지 인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기준과 땅의 그것은 그만큼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인침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해서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경륜을 이루시는 하나의 관례입니다. 고넬료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 하나님이 기억할 정도로 믿음이 독실하였지만,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를 통하여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 즉 인치는 자가 없으면 인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사람도 약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바울이 나타나자 점점 은총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약해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같은 주의 사도이지만 말씀을 전하는 방법과 태도에서 두 사람 사이에 현저한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전9:2) 바울은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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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2

가 지지자들에 의해 주 안에서 사도라는 인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침은 어떤 인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침을 받으면 하나님의 군병이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집의 장자는 죽음을 면한 것처럼, 신약시대에도 인침을 받으면 그날에 해함을 받지 않게 됩니다.(계9:4)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식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먹고 마시면서 어떻게 살았다는 것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물론 ‘싸움터에 나가는 군사가 식량을 손수 마련해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것쯤 잘 알고 있었으며, ‘신령한 것을 뿌렸으니, 상대방에게서 먹을 것을 거두기로’ 거리낄 것이 없을 터이지만, 그런 목회자의 특권을 일체 보류하고 참았던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니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으므로,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권리를 다 쓰지 않는 것’으로나마 주님의 상(賞)으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아내까지 거느리고 육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고전9:5) 이것은 물론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로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지만, 바울과는 이렇게 대조적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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