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어디에 숨어 있다고 곧이곧대로 대어 성도들이 몽땅 잡혀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경우에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고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믿음에 이르는 길잡이에 불과합니다.
믿음이란 주의 성령을 마음속에 모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에도 이 율법주의의 횡포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누가 성령을 받고 본의 아닌 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크게 회개하고 끊긴 은혜의 연결을 받았는데, 교회에 나갔더니 단상에서 그의 죄상을 들어가면서 지옥을 면치 못할 마귀새끼라고 때렸다면 그는 실망한 나머지 타락해 버리기 십상입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성경 66권을 통틀어 ‘천당행’과 ‘지옥행’을 구분 짓는 율법으로 간주하고, 이 길을 가면 천당이다, 저 길을 가면 지옥이다, 이걸 지키면 구원이다, 못 지키면 개죽음이다, 하는 식으로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것을 율법주의의 대표적인 표본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받을 자는 하나도 없으며, 따라서 기독교는 간판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나는 앞에서 신약시대에 와서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받게 되어 있으며, 그렇게 되면 모세의 율법 대신 자유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모세의 율법과 자유의 율법은 어떻게 다른가? 그 차이점에 대하여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가령 통장에 100만 원의 예금을 한 사람이 어떤 상점에 갔다가 100